대한민국의 모든 비스포크 테일러샵을 응원합니다.

 

올해 1분기 경제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逆 성장을 기록 중이며, 대한민국 테일러샵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일 혼인율 역시 월별 통계자료가 수집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최근 지속되는 어려운 경기 상황과 수많은 해외 브랜드의 남성복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시점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모든 비스포크 테일러샵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비스포크 테일러샵'이라고 칭하는 샵에게는 일정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규모는 작더라도 자체 생산 시설에서 온전히 그들만의 노력으로 수트를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재단과 가봉, 그리고 가봉 수정 사항을 온전히 그들만의 노하우와 노력으로 해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비천함과 비겁함을 느끼지 않는 곳이어야 합니다.

 

작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연말 행사장에서 국내 1,2위를 다투는 전국 매장 수를 가지고 있는 프랜차이즈 테일러샵 브랜드 대표님을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 귀를 계속 의심하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휴... 저희는 그냥 장사죠. 옷을 만드는 게 아니고."

 

그분을 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의 사업 모델이니 존중하고 그들의 사업 마인드와 자본력, 대중을 만족시키는 매스(Mass) 시스템은 때로는 부럽기까지 합니다.

 

또는 '비스포크'라는 단어를 마치 마케팅 용어인 양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여 40년 된 장인이 100% 핸드메이드로 옷을 만든다고 선전하는 (실제로는 매장에서 본인이 가봉만 보며 외주 공장에서 옷을 가져다 파는) 가짜 '비스포크 테일러샵' 사장님들도 그분들의 인생이니 별로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사업 모델이니까요.

 

한 TV 채널에 사회자가 유시민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그런 고초를 겪었던) 민주화 운동을 다시 하실 것 같으냐고"

 

그러자 그분 말이 "다시 태어나도 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내 스스로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

 

물론, 당대 상황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비겁하며 비루한 인생을 산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본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주변의 만류에도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과격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회를 변화 시키기기도 하고 어떤 시각에서는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기 보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행동을 한다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저는 감히 대한민국 양복쟁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대한민국의 진짜 양복쟁이, 그들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이 일을 행합니다. 물론 그들도 때로는 속이 쓰리고 언제까지 그놈의 자랑스러운 '비스포크 테일러샵'이라는 이름 아래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비겁함을 포기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이타심'을 가진 분들입니다.

 

제가 아는 그들은 절대로 소비자를 위해서 좋은 양복을 만들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비천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여전히 재단 가위를 놓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바느질로 옷 한 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바늘을 손에 쥡니다. 생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적어도  '나는 비겁하게 옷을 만들지 않았다'라며 자위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어깨너머로 재단을 배우던 꼬맹이가 기술도 체 터득하기 전에 자본가와 손을 잡고 강남에 예복샵을 차렸다가 소위 말해 대박을 터트려 건물주가 된 것이 때로는 부럽고 스스로에게 황망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경기지만 남이 만든 옷은 죽어도 팔지 못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바느질과 재단 선에 여전히 집착하는 이기적인 당신들 덕분에 저 역시 매일매일 영감을 받고 두렵지만 참고 버티며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나는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 이 글은 KBS2 <대화의 희열2> 유시민 편을 보고 느낀 점을 구술한 것으로 유시민 작가의 민주화 운동 및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사용한 표현 등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